화폐도 디지털이 트렌드, 전세계 CBDC 준비 본격화

코로나 19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디지털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전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이하 CBDC)"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CBDC는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새로운 전자화폐로, 민간에서 자유롭게 발행하는 암호화폐와 달리 중앙은행이 독점적으로 발행한다는 차이점을 가지는데요. 또한 가치변동성이 매우 심한 비트코인 등의 암호화폐와 달리, 중앙은행이 실물화폐와의 교환 또한 보장하고 있어 공신력이 담보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최근 수 년간 이러한 CBDC 발행을 준비하고자 하는 전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의 행보가 점차 가속화되는 중으로, 올해 초 65개국의 중앙은행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BIS(Bank of International Settlements) 서베이에 의하면, 2020년 기준으로 조사 대상 중앙은행의 약 86%가량이 CBDC 개발을 추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미 CBDC 관련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중앙은행의 비율 역시 14%로, 전년도의 10% 대비 크게 증가했으며, PoC(proof-of-concept) 테스트를 진행 중인 중앙은행의 비율은 2019년 42%에서 2020년 60%까지 증가한 바 있습니다. 



CBDC 테스트 앞서가는 중국, DCEP 테스트 활발


이들 중앙은행 중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곳은 중국의 인민은행(PBOC)으로, 2014년에 이미 CBDC 연구팀을 설립하여 자국 CBDC인 DCEP(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 발행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하였습니다. 지난해 4월에는 선전, 쑤저우, 청두 등과 베이징 서쪽에 새롭게 조성된 슝안신구 등에서 DCEP의 테스트를 개시하였으며, 이를 추후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최 지역으로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홍콩 역시 테스트 지역 중 하나로, 홍콩 금융관리국(HKMA)은 지난해 12월 PBOC와 함께 크로스보더 결제에 디지털 위안화를 활용하는 테스트를 준비 중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이 중 쑤저우의 경우, 가장 적극적으로 테스트를 진행 중인 지역으로 5월부터 공무원들에 대한 교통비 지원을 디지털 화폐 형태로 지급해 온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지난해 12월에는 신년을 맞아서 이 디지털 위안화 200위안(약 30 달러) 씩을 담은 100,000개의 디지털 홍바오(紅包, 세뱃돈이 든 붉은색 종이봉투)를 준비해, 총 2,000만 위안 상당의 DCEP를 시민들에게 복권 방식으로 나누어 지급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선전 역시 지난달 10월 총 1,000만 위안 상당의 DCEP를 복권 방식으로 시민들에게 지급하는 유사한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선전의 경우 총 200만 명 이상이 신청하여 그 중 50,000만 명이 디지털 위안을 지급 받아 3,000곳 이상의 상점에서 이용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민간 기업들도 DCEP 테스트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중으로, 중국 최대 승차공유업체인 Didi Chuxing과 거대 푸드 딜리버리 업체 Meituan Dianping, 스트리밍 플랫폼 Bilibili 등이 DCEP 애플리케이션을 테스트해보기 위해 은행들과 협력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 주요 이커머스 업체 중 하나인 JD.com의 경우, 디지털 위안화를 결제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최초의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지난해 12월 핀테크 자회사 JD Digits이 쑤저우에서의 DCEP 테스트의 일환으로 자사 온라인 몰 상품 중 일부를 디지털 위안화로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슝안신구 역시 지난해 4월 DCEP 테스트에 McDonald’s, Starbucks, Subway 등 19개 업체를 초청하였습니다.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휴대전화에 디지털 월렛을 다운로드받은 뒤, 디지털 위안화를 은행계좌로부터 디지털 월렛으로 이체하면 되는데, 이렇게 디지털 월렛에 넣어둔 DCEP는 NFC 기술이나 인터넷을 이용해 심리스하게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인터넷이 오프라인 상태인 경우 발생한 디지털 거래는, 기기에 저장되었다가 휴대전화가 다시 인터넷에 연결되면 그때 실행되는데요. 이처럼 오프라인에서도 DCEP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커버리지가 제한적이고 전통적인 상업은행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서도 DCEP가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했다는 설명입니다. PBOC 부총재 이강(YiGang)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바에 의하면, 디지털 위안화를 이용해 이미 약 400건의 거래가 발생한 상태로, 해당 거래를 통해 지출된 금액은 20억 위안(약 3억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중국건설은행(CCB)의 디지털 위안화 월렛

출처: China Briefing


그 외에도 중국에서는 DCEP를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자 하는 중인데요, 중국 신화통신에 의하면, DCEP는 ‘통제 가능한 익명성(可控匿名·controllable anonymity)’ 원칙을 기반으로 하는데 이는 DCEP를 이용한 거래 시, 프라이버시를 위해 양측 모두 익명으로 거래에 임할 수 있지만, 부패나 자금세탁, 탈세, 테러단체로의 자금 유입 등의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이 거래 내역을 들여다보고 이를 추적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때문에 DCEP는 중앙은행이 주 정부의 예산이나 재정 보조금 집행을 적법하게 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데도 사용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상업은행에 소상공인 대출 지원을 위한 자금을 DCEP 형태로 지급할 경우, 해당 금액이 오직 소상공인 대출의 용도로만 활용되고 있는지를 중앙은행이 감시할 수 있게 되는 식입니다. 


국제적으로 봤을 때, DCEP는 향후 중국이 SWIFT(국제은행간 통신협정) 등의 달러화 기반 국제 결제 시스템에 의존하지도 않고도 해외 송금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도 활용될 여지가 있습니다. 이는 특히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경제 제재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현 상황에서 중국 정부에 있어 중요한 부분으로, 왕샤오쑹(王孝松) 중국 인민대학 경제학원 교수는 17일 열린 ‘2021 아시아·태평양 금융포럼’에서 ‘CBDC, 미래 화폐의 대안인가’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만약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더 심해지면, 미국이 더 독한 수법으로 중국의 SWIFT 사용을 막을 수 있다. DCEP는 중국의 대비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SWIFT와 미국도매결제시스템(CHIPS)에서 배제할 경우, 현재의 전자화폐 시스템이 이에 대한 대체재로 기능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Libra가 불씨 당긴 미국, 연준도 CBDC 발행 준비 착수


이처럼 중국의 DCEP 확대에 대해 국제 결제에서 현재 달러화가 가진 패권을 뺏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는 CBDC와 관련해 세계 최초 경쟁에는 참여할 의사가 없으며, 발행을 위해서는 이해관계자들과 광범위한(extensive) 공적 논의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는 있으나, 그럼에도 미 연준은 지난해 8월 디지털 화폐 관련 기술에 대한 테스트를 확대하는 등, 본격적인 준비에 나서고 있는 중입니다. 보스턴 연방준비은행의 경우, 이미 미국 메사추세스공과대학교(MIT) 연구자들과 중앙은행에서 이용하기 위한 디지털 화폐 연구를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또한 연준은 Cleveland, Dallas, and New York 지역 저축은행의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로 구성된 팀을 구성하였으며, 워싱턴 연준의 정책팀과 함께 "디지털 화폐가 결제 생태계, 통화정책, 금융안정성, 은행업무 및 금융, 소비자 보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인 것으로도 알려졌는데요. 이 외에도 미국 통화금융청(OCC)은 국내 시중 은행들의 퍼블릭 블록체인 활용 및 달러 연계 가상화폐(스테이블 코인)를 사용한 결제를 승인하는 등, CBDC 발행을 위한 법적, 기술적 검증에 속도를 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미국에서 이처럼 CBDC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게 된 데에는 중국의 DCEP 발행 움직임 뿐만 아니라, 2019년 발표된 Facebook의 Libra 프로젝트(현재는 Diem으로 리브랜딩) 발족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됩니다. Libra는 2019년 6월 Facebook 주도로 28개 기업이 참여하는 Libra Association이 발족되며 출범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로,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비영리조직 Libra Association의 거버넌스 하에 간편한 “글로벌 통화 및 금융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을 비전으로 내세웠으나, 각국 규제기관 및 의회로부터 강도 높은 비판에 직면하며 출시 계획에 차질을 빚어 왔습니다. 이때 가장 집중적으로 비판받았던 부분이 Facebook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 기업이 자체 통화를 발행할 경우, 기존의 중앙은행 중심 화폐 체계 및 통화 주권 등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으로, 관련 논쟁이 이어지며 PayPal, Visa, Mastercard 등의 주요 Libra Association 회원사들이 연이어 협회를 탈퇴하기도 했습니다. 


출범 당시의 Libra Association

출처: Libra Association


Libra에 대해 연준 의장 Jerome Powell은 “일종의 기상 전화(wakeup call)”와 같았다며 디지털 화폐 발행 관련 연준의 움직임에 “불을 붙였다(really lit a fire)”고 밝힌 바 있는데요. 이 같은 비판과 미국의 CBDC 발행 움직임을 의식한 Libra는 지난해 4월 방향성을 대거 수정한 Libra v2.0 백서를 새롭게 공개한 상태입니다. Facebook이 강조한 변화는 크게 네 가지로, 다중통화(multi-currency) 코인 외에 단일 통화(single-currency) 스테이블 코인 지원을 추가했다는 점과 강력한 컴플라이언스 프레임워크를 추가함으로써 결제 시스템의 안전성을 높였다는 것, 비허가형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포기했다는 것과 Libra Reserve 설계에 보호 기능을 추가했다는 것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중 2019년 6월 공개한 v1.0 대비 가장 큰 차이는 Libra 코인을 각 국가별 법정 화페와 경쟁하는 주권 화폐가 아니라, 법정 화폐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새롭게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v1.0에서는 다중 통화 연동의 단일 암호화폐만을 지원했던 것과 달리 v.2.0에서는 단일 통화 연동의 다양한 스테이블코인과 CBDC까지 이용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것으로 변경된 것입니다. 글로벌한 단일 통화가 되겠다는 기존의 비전을 대신, 다양한 디지털 통화를 수용하는 결제 시스템으로 Libra를 재정의함으로써 각국의 규제를 누그러뜨리는 한편, 각국 중앙은행이 준비 중인 CBDC와 경쟁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는 평가입니다. 


아울러 공신력 및 안정성 관련 비판을 의식하여 허가형(Permissioned, 프라이빗) 시스템으로 운영하다가 향후 비허가형(Permissionless, 퍼블릭) 시스템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 역시, 비허가형 전환 없이 허가형 시스템을 유지한다는 것으로 변경하였는데,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기존 중앙화 방식의 결제 프로젝트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영국의 Financial Times는 Facebook의 Libra가 세상을 뒤바꿀 혁신자(World Changer)에서 PayPal의 아류로 전락해 버렸다는 논평을 내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규제 당국과의 타협을 통해 출시를 가로막던 각종 불확실성이 다수 해소되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다수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선 Facebook은 이후 12월, 이 같은 구조 개편을 강조하고자 프로젝트의 명칭 역시 Libra에서 Diem으로 전면 리브랜딩한 상태로, 이 같은 이미지 쇄신을 통해 최대한 올 상반기 런칭을 추진한다는 입장입니다. 



PayPal, Visa, Mastercard도 암호화폐 관련 움직임 활발


한편, Libra Association에서 탈퇴한 PayPal, Visa, Mastercard 등도 블록체인 기반 결제 지원을 위한 개별 행보를 적극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선 PayPal의 경우 지난해 10월 Paxos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뉴욕주 금융서비스국(NYDFS)의 암호화폐 라이센스를 인정받아, Paypal 앱과 Venmo앱을 통해서 암호화폐 구매, 보유, 판매를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암호화폐를 이용한 결제도 지원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당시 TechCrunch는 PayPal의 유저들이 2,800만 명에 달하는 머천트들과의 거래에서 암호화폐를 통해 지불할 수 있게 된다며, 암호화폐의 채택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PayPal의 암호화폐 서비스


출처: PayPal YouTube 채널


Visa의 경우, Coinbase 등 35개 암호화폐 플랫폼들과 파트너십을 체결한데 이어 올해 2월, 전통적인 은행들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Visa Crypto API 파일럿을 개시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흑인 커뮤니티를 위한 네오뱅크인 First Boulevard과 함께 진행하게 될 해당 파일럿은 암호화폐 자산 및 블록체인을 지원하기 위한 인프라를 가지지 못한 금융기관이나 네오뱅크들이 Visa Crypto API를 이용해 고객들에게 암호화폐 거래 기능을 제공할 수 있도록 돕는 내용으로, 우선 First Boulevard의 흑인 고객들이 암호화폐 자산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그들의 경제적 지위 향상(economic empowerment)을 도모한다는 계획입니다. 보다 장기적 차원에서 이는 암호화폐 영역에서 일종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Visa의 비전을 보여주는 것으로, Visa는 "혁신적인 컨수머향 암호화폐 월렛과 7,000만 곳 이상의 머천트로 구성된 Visa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잇는 다리"역할을 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였습니다. 


Mastercard 역시 올해 2월, 연내로 “선별된 일부 암호화폐”를 자사 네트워크에서 지원하기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는데요. Mastercard가 강조하는 점은 고객에게 선택권을 제공하는 것으로 “암호화폐를 이용하기 시작하라고 권유”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객, 머천트, 비즈니스들이 전통적인 형태 혹은 암호화폐의 형태이든 간에 디지털 자산을 원하는 방식으로 이동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설명입니다다. Mastercard는 고객이 상품을 구매하고자 할 시에, 자사 암호화폐 파트너들을 통해 암호화폐를 전통적인 화폐로 변환한 뒤, Mastercard 네트워크를 통해 송금하도록 함으로써 암호화폐 사용을 지원할 예정으로, 이 같은 변화로 인해 “더 많은 머천트들이 암호화폐를 수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각국의 중앙은행 및 Facebook 등 글로벌 테크 플랫폼을 비롯하여 PayPal, Visa, Mastercard 등 거대 결제 플랫폼에 이르는 전세계의 빅플레이어들이 암호화폐를 비롯한 디지털 화폐를 적극 수용하고자 움직이고 있는 양상인데요.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온 중국의 CBDC 발행이 임박한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역시 기존 국제통화시장에서 보유하고 있던 주도권을 디지털 화폐 시장으로도 이어가기 위해 준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에 더해 민간 영역에서도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사용자 층을 거느린 사업자들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임에 따라 디지털 화폐 도입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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