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택과 뉴스레터 열풍, '인사이트'는 정말 미디어의 미래일까?

삼 년 전까지만 해도 뉴스 미디어들의 장밋빛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았던 단어 '유료 섭스크립션'이 이제는 뉴스 미디어에 내려질 사망 선고로 변모해 버린 듯합니다. 얼마 전 안드레센 호로위츠의 리드로 6억 5,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유료 뉴스레터 플랫폼 서브스택(Substack) 이야기입니다.


악시오스(Axios)의 비즈니스 애디터 댄 프리맥(Dan Primack)는 서브스택의 투자 유치 소식을 알리는 기사를 두고 “자신의 부고기사를 직접 쓰는 경우는 또 처음봤다”는 문자를 받았다고까지 할 정도인데요. 일각에선 주류 미디어들은 지나치게 부정적인 면에만 집중한다며 미디어들과 꾸준히 대립해 온 안드레센 호로위츠가 이들을 응징하기 위해 서브스택에 투자했다는 설까지 돌 정도로 많은 이들이 서브스택을 주류 미디어 중심의 저널리즘에 종언을 고할 미디어 킬러(Killer)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즈, DT 대표 성공사례에서 서브스택의 먹잇감으로 


서브스택의 최근 행보를 보면 주류 미디어들이 위협감을 느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단순히 고객에게 대안적 저널리즘을 옵션으로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막대한 금액의 선불금(advance)을 제안하며 이들 미디어의 유명 저널리스트들을 싹쓸이해오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더버지(The Verge)의 캐시 뉴튼(Casey Newton), 복스(Vox)의 매튜 잉글레시아스(Matthew Yglesias), 뉴욕타임즈(NYT)의 찰리 와젤(Charlie Warzel) 등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뉴욕타임즈의 출혈이 심각해 보이는데요. 위의 와젤 외에도 인터넷 문화 전문기자 테일러 로렌츠(Taylor Lorenz) 30만 달러의 선불금을 제안받고 뉴욕타임즈를 나와 뉴스레터를 시작했으며, 오피니언 섹션 작가인 리즈 브뤼닝(Liz Bruenig) 역시 풀타임 서브스택 작가로 전향하는 조건으로 20만 달러의 선불금을 제안받은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미디어 칼럼니스트 해당 보도에서 함께 언급된 벤 미디어 칼럼니스트 벤 스미스(Ben Smith)의 경우 뉴욕타임즈 칼럼을 통해 지금받고 있는 연봉보다 훨씬 큰 금액의 선불금을 서브스택으로부터 제안받았으나 거절했다고 직접 밝혔습니다.


뉴욕타임즈 역시 주요 필진들이 줄줄이 이탈하는 지금의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뉴욕타임즈는 서브스택으로 떠난 뒤에도 기고자(contributor)로 남아 뉴욕타임즈에 계속 투고하겠다는 와젤의 요청을 거부하며, 직원들이 서브스택을 비롯한 뉴스레터 플랫폼들에 개인 뉴스레터를 런칭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고 밝혔는데요. 직원들에 전송한 이메일을 통해 뉴욕타임즈는 그 이유를 “이들 (뉴스레터) 사이트들이 점진적으로 뉴욕타임즈의 직접적 경쟁자처럼 행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뉴욕타임즈가 직접 서브스택을 자신들의 경쟁자 혹은 위협으로 인지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재밌는 점은 지금 서브스택의 주된 먹잇감이 되어버린 뉴욕타임즈가, 2018년 디지털 미디어 유료화 열풍이 휩쓸 당시 이러한 트렌드를 이끄는 선도주자로 평가받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로아리포트 역시 이같은 트렌드를 소개하며, 재정난 소식이 한창이던 버즈피드(Buzzfeed) 같은 광고기반 무료 디지털 미디어와 유료 섭스크립션을 성공적으로 도입한 디지털 미디어간의 차이를 아래와 같이 분석했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깊이 있는 분석인사이트일 것 같습니다.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한 인사이트 제공이 이들 유료 미디어의 장점이라는 것인데요. 그런데 이 글에서 미처 묻지 않고 끝낸 질문이 있습니다. 과연 이깊이 있는 분석인사이트란 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버즈피드 리스티클과 퀴즈보다 2020 1월 뉴욕타임즈로 자리를 옮긴 전 버즈피드 편집장 벤 스미스가 쓴 장문의 컬럼이 더 깊이 있는분석과 인사이트를 담았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겠지만, 비교 대상이 버즈피드가 아니라 서브스택을 이용하는 독립 저널리스트들이나 전문 블로거들이 되면 그때도 양자의 차이를 분석의 깊이로 가늠할 수 있을까요?


가령, 같은 테슬라(Tesla) 실적을 두고 탄소배출권 판매 매출의 높은 비중과 피아트크라이슬러(FCA) 같은 대형 탄소배출권 고객의 이탈에 주목하며 테슬라 주식의 가치를 저평가한 블룸버그(Bloomberg) 같은 주류 미디어들과, 높은 R&D 지출에 주목하며 테슬라의 미래가치를 고평가한 레이어드같은 테슬라 전문 블로거들 중에는 누가 더 깊이가 있다고 봐야할까요? 주류 미디어들을 부정적인 네러티드에만 천착하는 집단사고에 사로잡혔다고 비난한 안드레센 호로위츠는 물론 후자라고 답하겠지만, 전자를 택한 이들에게 후자는 주기적으로 테라노스(Theranos)나 위워크(WeWork)를 가능하게 했던 실리콘밸리발 혁신에 대한 집단적 낙관의 산물일 뿐일 것입니다.


이처럼 일정수준 이상의 깊이를 갖춘 두 개의 중 무엇에 더 높은 가치가 있는지를 결정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독자들이 분석을 통해 얻고자 하는 인사이트(통찰)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사실에 대한 해석이며, 해석에는 언제나 주관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독자가 인사이트를 얻고자 하는 문제(예를 들어, 테슬라는 10년 뒤에 애플과 같은 존재가 될까, 아니면 차량제조사 탑 5 정도에 머무르게 될까 같은)는 대부분 현재로서는 여러 개의 해석 중 무엇이 맞는지 입증할 수 없는 문제들이고, 따라서 그 중 무엇을 선택할지에 대한 기준은 기사 자체의 품질이 보다는 독자 자신의 관점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뉴스 vs 오피니언, 두 번째 선택의 기로에 놓인 뉴욕타임즈 


다시 말해, 이는 미디어의 전통적인 역할로 꼽히는 보도가 객관적인 속성을 가지는 것과는 달리, 뉴욕타임즈와 같은 섭스크립션 기반 미디어들이 버즈피드 같은 광고기반 무료 미디어들에 대한 차별점으로 내세웠던 인사이트는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속성을 가집니다. 실제로 뉴욕타임즈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앞두고 오피니언 섹션을 대대적으로 강화했는데요. 유명 작가들이 대거 포진한 오피니언 섹션의 인기는 뉴욕타임즈 디지털 섭스크립션 가입자수 증가를 견인한 일등 공신으로 평가되어 왔습니다. , 뉴욕타임즈는 스스로의 주관성을 강화하여 팬을 확보하고, 이들에게 유료 섭스크립션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브스택의 부상에 대한 뉴욕타임즈의 대응 역시 주관성을 한층 더 강화하는 것인 듯합니다. 위에 언급된 직원대상 이메일에서 뉴욕타임즈는 기자들에게 서브스택으로 자리를 옮기는 대신, 뉴욕타임즈 플랫폼을 이용해 개인 뉴스레터를 발행할 것을 독려하며 앞으로 이 뉴스레터들에 개성을 좀 더 주입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현재 약 70종 가량 존재하는 뉴욕타임즈 뉴스레터들은 대부분 뉴스 요약 및 라운드업 형태이지만, 앞으로는 데이비즈 레온하르트(David Leonhardt)의 뉴스레터 모닝’(Morning)과 시라 오비드(Shira Ovide)온테크’(On Tech)를 시작으로 기자 개개인의 독창적 관점과 개성이 보다 부각되는 뉴스레터를 늘려가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략의 근간이 되는 등식을 정리해보면 대략 아래와 같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 중 주관성에 해당하는 요소들을 핵심 강점으로 내세울 경우, 뉴스룸을 그 존재 근간으로 하는 전통 미디어 기업들이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을 주체로 하는 서브스택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전통 미디어들은 기본적으로 엄격한 팩트체크의 과정을 거치며, 오피니언 섹션의 경우 보도면에 비해 비교적 개인의 자유도가 높을 수는 있으나 뉴스룸의 보도원칙에 어느정도 구애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들이 갈수록 친트럼프적이고 극우적인 성향이 강해지는 자사 오피니언에 대해 팩트체킹을 거치지 않은 주장으로 독자의 신뢰를 깎아먹고 있다며 개선을 요구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전통 미디어의 경우, 수용할 수 있는 주관의 폭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 역시 고려되어야 합니다. 전통 미디어들은 일반적으로 상당기간동안 유지해 온 고유의 정치·사회·경제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토대로 코어 독자층을 형성합니다. 때문에 이들 기존 독자들의 성향과 충돌하는 주관은 그것이 잠재적으로 얼마나 많은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가와 무관하게 수용되기 어려운데요. "우리가 구독자를 유실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구독자의 사망"이라는 농담이 돌 정도로 독자의 연령편중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젊은 독자들에 어필하기 위해 여성, 인종 등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보도를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음에도 별다른 변화를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고소득, 고연령의 보수적인 백인 남성이라는 기존 코어 독자층의 심기를 건드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서브스택에 있어서는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입니다. 서브스택은 완전히 중립적인 플랫폼이고, 이 플랫폼을 이용해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개인들의 성향은 서브스택과는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서브스택에는 극좌부터 극우까지 모든 성향의 뉴스레터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그 중 한 뉴스레터가 다른 뉴스레터의 독자층에게 매우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단일한 지면을 750만 명의 유료 구독자들에 제공하고 있는 뉴욕타임즈와는 달리, 합산 유료 가입자수 50만 명이 수없이 많은 뉴스레터에 분산되어있는 서브스택에는 매우 논쟁적이거나, 아주 적은 수의 니치에만 어필할 수 있는 뉴스레터들이 얼마든지 존재해도 되는 것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전통 미디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역으로 오피니언 섹션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뉴스룸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이 수많은 제약을 가진 전통 미디어들이 서브스택을 그대로 모방하는 방식으로 서브스택에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식도 아닐뿐더러, 그것이 저널리즘의 미래에 있어 바람직한 방향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슬레이트(Slate)의 웰 오레머스(Will Oremus)의 경우, 저널리즘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 치켜세워지는 서브스택 뉴스레터들은 대부분 엄밀히 말해 뉴스가 아니라 해설(commentary)과 분석(analysis)에 가깝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서브스택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오피니언 섹션에 맞춰져 있던 초점을 서브스택이 절대로 제공할 수 없는 가치이자 동시에 언론의 본령이기도 한 뉴스 그 자체, 보도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디지털 저널리즘 전문 블로그를 운영하는 저널리스트 아담 틴워드(Adam Tinworth) 역시 ‘뉴스레터가 신문을 대체할 수 없는 이유(Why newsletters won’t kill newspapers)’라는 제목의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보도와 오피니언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은 언론의 신뢰에 있어 좋지 않은 일이었다며, 서브스택의 부상은 오히려 전통 미디어들에 있어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고 분석하는데요. 지금이야말로 전문가의 견해(punditry) 본질적인 특성으로 삼는 저널리즘에서 벗어나 보도 중심의 저널리즘으로 선회하기 위한 적기라는 것입니다.



'인사이트'라는 말의 숨은 함정, 미디어가 가야할 길은?


최근 뉴스레터의 범람과 함께 국내에서도 네이버가 지난달 프리미엄 콘텐츠 베타를 출시하는 등, 하나둘씩 텍스트 콘텐츠를 유료 섭스크립션 기반으로 제공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는 중인데요. 프리미엄 콘텐츠에 참여중인 채널들의 프로필 설명을 보면 여기서도 역시 핵심 화두는 '인사이트'인 것으로 보입니다. 텍스트 기반 콘텐츠의 유료화를 선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퍼블리의 인사이트의 제공이 핵심 가치로 빠지지 않고 언제나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치 뉴욕타임즈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성공담이 미디어업계 최대의 화두이던 2018년 당시 미국처럼, 지금 한국은 누구도 인사이트가 미디어가 제공할 수 있는 최상위 가치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듯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서브스택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는 너무나 당연한 듯해 보이는 이 명제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끔 만듭니다. 과연 인사이트는 모든 미디어가 제공해야 할 가치일까요? ‘인사이트라는 말을 미디어 업계의 핫 키워드로 떠오르게 만든 서브스택 붐은, 이걸 기회로 삼고자 하는 정보 제공 미디어들에게 정말로 희소식이 맞는 걸까요?


서브스택 붐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의심은 더욱 깊어집니다. 안드레센 호로위츠의 마크 안드레센는 서브스택의 부상 원인을 두고 다이렉트--크리에이터라는 인터넷 콘텐츠 수익화의 세 번째 물결이 오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는데, 이는 즉 서브스택이 페이트리온(Patreon), 온리팬즈(Only Fans) 등의 창작자 후원 플랫폼과 동일한 속성을 가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플랫폼들을 다른 말로는 흔히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개인)라고도 부르는데요. 문제는 이들 인플루언서들에 대한 후원의사가 사실 이들이 제공하는 콘텐츠 자체보다는 팬들과 인플루언서간에 존재하는 '준 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s)'로부터 더 많이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최근 서브스택으로 자리를 옮긴 전 더버지 기자 캐시 뉴튼은 “출판물 자체를 팔로잉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리포터나 작가, 유튜버, 팟캐스터 개인을 좋아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며, “지불을 통해 이들 창작자를 직접 지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로 설명하기도 했는데요. 언뜻 보면 텍스트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지불의사가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콘텐츠와 그것을 발행하는 개인의 대립구도에서 콘텐츠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오히려 콘텐츠가 그것을 발행하는 개인에 종속되고 있는 듯한 뉘앙스의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정보 제공형 텍스트 콘텐츠를 수년간 제공해 오고 있는 입장에서, 서브스택의 붐과 함께 너도나도 인사이트를 강조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로아컨설팅에서 제공하던 해외 동향 모니터링 서비스를 DB화한 것을 시초로 만들어진 로아리포트에서는 기업들이 전략결정에 활용할 수 있는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해외 정보를, 업계 지식을 갖춘 전문 컨설턴트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복수의 프리미엄 뉴스 소스 및 리서치 보고서를 교차 확인 후 취합, 번역 및 요약하여 전해드리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최근들어 이러한 '뉴스'의 가치가 점점 더 평가절하되고 있는 듯한 양상이기 때문입니다. 


평소보다 매우 주관이 짙게 섞인 이 글 역시 로아만의 독창적인 인사이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수렴의 결과물로 나오게 된 것인데요. ‘인사이트를 강조하며 이루어졌던 뉴욕타임즈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사실은 오피니언 섹션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면, 또한 이 오피니언 섹션에 대한 지불의사가 그것이 담고 있는 콘텐츠보다는 그것을 쓴 개인의 매력에 대한 것이었다면, ‘인사이트만을 쫓는 것은 자칫 뉴욕타임즈가 그랬듯 제무덤을 제가 파는 꼴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지금이야 말로 오피니언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뉴스로 돌아갈 때라는 뉴욕타임즈에 대한 조언이 유달리 귀에 오래 남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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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시오스(Axios)의 비즈니스 애디터 댄 프리맥(Dan Primack)는 서브스택의 투자 유치 소식을 알리는 기사를 두고 “자신의 부고기사를 직접 쓰는 경우는 또 처음봤다”는 문자를 받았다고까지 할 정도인데요. 일각에선 주류 미디어들은 지나치게 부정적인 면에만 집중한다며 미디어들과 꾸준히 대립해 온 안드레센 호로위츠가 이들을 응징하기 위해 서브스택에 투자했다는 설까지 돌 정도로 많은 이들이 서브스택을 주류 미디어 중심의 저널리즘에 종언을 고할 미디어 킬러(Killer)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즈, DT 대표 성공사례에서 서브스택의 먹잇감으로 


서브스택의 최근 행보를 보면 주류 미디어들이 위협감을 느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단순히 고객에게 대안적 저널리즘을 옵션으로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막대한 금액의 선불금(advance)을 제안하며 이들 미디어의 유명 저널리스트들을 싹쓸이해오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더버지(The Verge)의 캐시 뉴튼(Casey Newton), 복스(Vox)의 매튜 잉글레시아스(Matthew Yglesias), 뉴욕타임즈(NYT)의 찰리 와젤(Charlie Warzel) 등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뉴욕타임즈의 출혈이 심각해 보이는데요. 위의 와젤 외에도 인터넷 문화 전문기자 테일러 로렌츠(Taylor Lorenz) 30만 달러의 선불금을 제안받고 뉴욕타임즈를 나와 뉴스레터를 시작했으며, 오피니언 섹션 작가인 리즈 브뤼닝(Liz Bruenig) 역시 풀타임 서브스택 작가로 전향하는 조건으로 20만 달러의 선불금을 제안받은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미디어 칼럼니스트 해당 보도에서 함께 언급된 벤 미디어 칼럼니스트 벤 스미스(Ben Smith)의 경우 뉴욕타임즈 칼럼을 통해 지금받고 있는 연봉보다 훨씬 큰 금액의 선불금을 서브스택으로부터 제안받았으나 거절했다고 직접 밝혔습니다.


뉴욕타임즈 역시 주요 필진들이 줄줄이 이탈하는 지금의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뉴욕타임즈는 서브스택으로 떠난 뒤에도 기고자(contributor)로 남아 뉴욕타임즈에 계속 투고하겠다는 와젤의 요청을 거부하며, 직원들이 서브스택을 비롯한 뉴스레터 플랫폼들에 개인 뉴스레터를 런칭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고 밝혔는데요. 직원들에 전송한 이메일을 통해 뉴욕타임즈는 그 이유를 “이들 (뉴스레터) 사이트들이 점진적으로 뉴욕타임즈의 직접적 경쟁자처럼 행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뉴욕타임즈가 직접 서브스택을 자신들의 경쟁자 혹은 위협으로 인지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재밌는 점은 지금 서브스택의 주된 먹잇감이 되어버린 뉴욕타임즈가, 2018년 디지털 미디어 유료화 열풍이 휩쓸 당시 이러한 트렌드를 이끄는 선도주자로 평가받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로아리포트 역시 이같은 트렌드를 소개하며, 재정난 소식이 한창이던 버즈피드(Buzzfeed) 같은 광고기반 무료 디지털 미디어와 유료 섭스크립션을 성공적으로 도입한 디지털 미디어간의 차이를 아래와 같이 분석했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깊이 있는 분석인사이트일 것 같습니다.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한 인사이트 제공이 이들 유료 미디어의 장점이라는 것인데요. 그런데 이 글에서 미처 묻지 않고 끝낸 질문이 있습니다. 과연 이깊이 있는 분석인사이트란 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버즈피드 리스티클과 퀴즈보다 2020 1월 뉴욕타임즈로 자리를 옮긴 전 버즈피드 편집장 벤 스미스가 쓴 장문의 컬럼이 더 깊이 있는분석과 인사이트를 담았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겠지만, 비교 대상이 버즈피드가 아니라 서브스택을 이용하는 독립 저널리스트들이나 전문 블로거들이 되면 그때도 양자의 차이를 분석의 깊이로 가늠할 수 있을까요?


가령, 같은 테슬라(Tesla) 실적을 두고 탄소배출권 판매 매출의 높은 비중과 피아트크라이슬러(FCA) 같은 대형 탄소배출권 고객의 이탈에 주목하며 테슬라 주식의 가치를 저평가한 블룸버그(Bloomberg) 같은 주류 미디어들과, 높은 R&D 지출에 주목하며 테슬라의 미래가치를 고평가한 레이어드같은 테슬라 전문 블로거들 중에는 누가 더 깊이가 있다고 봐야할까요? 주류 미디어들을 부정적인 네러티드에만 천착하는 집단사고에 사로잡혔다고 비난한 안드레센 호로위츠는 물론 후자라고 답하겠지만, 전자를 택한 이들에게 후자는 주기적으로 테라노스(Theranos)나 위워크(WeWork)를 가능하게 했던 실리콘밸리발 혁신에 대한 집단적 낙관의 산물일 뿐일 것입니다.


이처럼 일정수준 이상의 깊이를 갖춘 두 개의 중 무엇에 더 높은 가치가 있는지를 결정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독자들이 분석을 통해 얻고자 하는 인사이트(통찰)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사실에 대한 해석이며, 해석에는 언제나 주관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독자가 인사이트를 얻고자 하는 문제(예를 들어, 테슬라는 10년 뒤에 애플과 같은 존재가 될까, 아니면 차량제조사 탑 5 정도에 머무르게 될까 같은)는 대부분 현재로서는 여러 개의 해석 중 무엇이 맞는지 입증할 수 없는 문제들이고, 따라서 그 중 무엇을 선택할지에 대한 기준은 기사 자체의 품질이 보다는 독자 자신의 관점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뉴스 vs 오피니언, 두 번째 선택의 기로에 놓인 뉴욕타임즈 


다시 말해, 이는 미디어의 전통적인 역할로 꼽히는 보도가 객관적인 속성을 가지는 것과는 달리, 뉴욕타임즈와 같은 섭스크립션 기반 미디어들이 버즈피드 같은 광고기반 무료 미디어들에 대한 차별점으로 내세웠던 인사이트는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속성을 가집니다. 실제로 뉴욕타임즈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앞두고 오피니언 섹션을 대대적으로 강화했는데요. 유명 작가들이 대거 포진한 오피니언 섹션의 인기는 뉴욕타임즈 디지털 섭스크립션 가입자수 증가를 견인한 일등 공신으로 평가되어 왔습니다. , 뉴욕타임즈는 스스로의 주관성을 강화하여 팬을 확보하고, 이들에게 유료 섭스크립션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브스택의 부상에 대한 뉴욕타임즈의 대응 역시 주관성을 한층 더 강화하는 것인 듯합니다. 위에 언급된 직원대상 이메일에서 뉴욕타임즈는 기자들에게 서브스택으로 자리를 옮기는 대신, 뉴욕타임즈 플랫폼을 이용해 개인 뉴스레터를 발행할 것을 독려하며 앞으로 이 뉴스레터들에 개성을 좀 더 주입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현재 약 70종 가량 존재하는 뉴욕타임즈 뉴스레터들은 대부분 뉴스 요약 및 라운드업 형태이지만, 앞으로는 데이비즈 레온하르트(David Leonhardt)의 뉴스레터 모닝’(Morning)과 시라 오비드(Shira Ovide)온테크’(On Tech)를 시작으로 기자 개개인의 독창적 관점과 개성이 보다 부각되는 뉴스레터를 늘려가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략의 근간이 되는 등식을 정리해보면 대략 아래와 같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 중 주관성에 해당하는 요소들을 핵심 강점으로 내세울 경우, 뉴스룸을 그 존재 근간으로 하는 전통 미디어 기업들이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을 주체로 하는 서브스택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전통 미디어들은 기본적으로 엄격한 팩트체크의 과정을 거치며, 오피니언 섹션의 경우 보도면에 비해 비교적 개인의 자유도가 높을 수는 있으나 뉴스룸의 보도원칙에 어느정도 구애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들이 갈수록 친트럼프적이고 극우적인 성향이 강해지는 자사 오피니언에 대해 팩트체킹을 거치지 않은 주장으로 독자의 신뢰를 깎아먹고 있다며 개선을 요구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전통 미디어의 경우, 수용할 수 있는 주관의 폭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 역시 고려되어야 합니다. 전통 미디어들은 일반적으로 상당기간동안 유지해 온 고유의 정치·사회·경제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토대로 코어 독자층을 형성합니다. 때문에 이들 기존 독자들의 성향과 충돌하는 주관은 그것이 잠재적으로 얼마나 많은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가와 무관하게 수용되기 어려운데요. "우리가 구독자를 유실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구독자의 사망"이라는 농담이 돌 정도로 독자의 연령편중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젊은 독자들에 어필하기 위해 여성, 인종 등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보도를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음에도 별다른 변화를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고소득, 고연령의 보수적인 백인 남성이라는 기존 코어 독자층의 심기를 건드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서브스택에 있어서는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입니다. 서브스택은 완전히 중립적인 플랫폼이고, 이 플랫폼을 이용해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개인들의 성향은 서브스택과는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서브스택에는 극좌부터 극우까지 모든 성향의 뉴스레터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그 중 한 뉴스레터가 다른 뉴스레터의 독자층에게 매우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단일한 지면을 750만 명의 유료 구독자들에 제공하고 있는 뉴욕타임즈와는 달리, 합산 유료 가입자수 50만 명이 수없이 많은 뉴스레터에 분산되어있는 서브스택에는 매우 논쟁적이거나, 아주 적은 수의 니치에만 어필할 수 있는 뉴스레터들이 얼마든지 존재해도 되는 것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전통 미디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역으로 오피니언 섹션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뉴스룸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이 수많은 제약을 가진 전통 미디어들이 서브스택을 그대로 모방하는 방식으로 서브스택에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식도 아닐뿐더러, 그것이 저널리즘의 미래에 있어 바람직한 방향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슬레이트(Slate)의 웰 오레머스(Will Oremus)의 경우, 저널리즘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 치켜세워지는 서브스택 뉴스레터들은 대부분 엄밀히 말해 뉴스가 아니라 해설(commentary)과 분석(analysis)에 가깝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서브스택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오피니언 섹션에 맞춰져 있던 초점을 서브스택이 절대로 제공할 수 없는 가치이자 동시에 언론의 본령이기도 한 뉴스 그 자체, 보도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디지털 저널리즘 전문 블로그를 운영하는 저널리스트 아담 틴워드(Adam Tinworth) 역시 ‘뉴스레터가 신문을 대체할 수 없는 이유(Why newsletters won’t kill newspapers)’라는 제목의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보도와 오피니언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은 언론의 신뢰에 있어 좋지 않은 일이었다며, 서브스택의 부상은 오히려 전통 미디어들에 있어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고 분석하는데요. 지금이야말로 전문가의 견해(punditry) 본질적인 특성으로 삼는 저널리즘에서 벗어나 보도 중심의 저널리즘으로 선회하기 위한 적기라는 것입니다.



'인사이트'라는 말의 숨은 함정, 미디어가 가야할 길은?


최근 뉴스레터의 범람과 함께 국내에서도 네이버가 지난달 프리미엄 콘텐츠 베타를 출시하는 등, 하나둘씩 텍스트 콘텐츠를 유료 섭스크립션 기반으로 제공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는 중인데요. 프리미엄 콘텐츠에 참여중인 채널들의 프로필 설명을 보면 여기서도 역시 핵심 화두는 '인사이트'인 것으로 보입니다. 텍스트 기반 콘텐츠의 유료화를 선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퍼블리의 인사이트의 제공이 핵심 가치로 빠지지 않고 언제나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치 뉴욕타임즈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성공담이 미디어업계 최대의 화두이던 2018년 당시 미국처럼, 지금 한국은 누구도 인사이트가 미디어가 제공할 수 있는 최상위 가치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듯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서브스택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는 너무나 당연한 듯해 보이는 이 명제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끔 만듭니다. 과연 인사이트는 모든 미디어가 제공해야 할 가치일까요? ‘인사이트라는 말을 미디어 업계의 핫 키워드로 떠오르게 만든 서브스택 붐은, 이걸 기회로 삼고자 하는 정보 제공 미디어들에게 정말로 희소식이 맞는 걸까요?


서브스택 붐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의심은 더욱 깊어집니다. 안드레센 호로위츠의 마크 안드레센는 서브스택의 부상 원인을 두고 다이렉트--크리에이터라는 인터넷 콘텐츠 수익화의 세 번째 물결이 오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는데, 이는 즉 서브스택이 페이트리온(Patreon), 온리팬즈(Only Fans) 등의 창작자 후원 플랫폼과 동일한 속성을 가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플랫폼들을 다른 말로는 흔히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개인)라고도 부르는데요. 문제는 이들 인플루언서들에 대한 후원의사가 사실 이들이 제공하는 콘텐츠 자체보다는 팬들과 인플루언서간에 존재하는 '준 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s)'로부터 더 많이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최근 서브스택으로 자리를 옮긴 전 더버지 기자 캐시 뉴튼은 “출판물 자체를 팔로잉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리포터나 작가, 유튜버, 팟캐스터 개인을 좋아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며, “지불을 통해 이들 창작자를 직접 지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로 설명하기도 했는데요. 언뜻 보면 텍스트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지불의사가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콘텐츠와 그것을 발행하는 개인의 대립구도에서 콘텐츠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오히려 콘텐츠가 그것을 발행하는 개인에 종속되고 있는 듯한 뉘앙스의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정보 제공형 텍스트 콘텐츠를 수년간 제공해 오고 있는 입장에서, 서브스택의 붐과 함께 너도나도 인사이트를 강조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로아컨설팅에서 제공하던 해외 동향 모니터링 서비스를 DB화한 것을 시초로 만들어진 로아리포트에서는 기업들이 전략결정에 활용할 수 있는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해외 정보를, 업계 지식을 갖춘 전문 컨설턴트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복수의 프리미엄 뉴스 소스 및 리서치 보고서를 교차 확인 후 취합, 번역 및 요약하여 전해드리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최근들어 이러한 '뉴스'의 가치가 점점 더 평가절하되고 있는 듯한 양상이기 때문입니다. 


평소보다 매우 주관이 짙게 섞인 이 글 역시 로아만의 독창적인 인사이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수렴의 결과물로 나오게 된 것인데요. ‘인사이트를 강조하며 이루어졌던 뉴욕타임즈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사실은 오피니언 섹션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면, 또한 이 오피니언 섹션에 대한 지불의사가 그것이 담고 있는 콘텐츠보다는 그것을 쓴 개인의 매력에 대한 것이었다면, ‘인사이트만을 쫓는 것은 자칫 뉴욕타임즈가 그랬듯 제무덤을 제가 파는 꼴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지금이야 말로 오피니언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뉴스로 돌아갈 때라는 뉴욕타임즈에 대한 조언이 유달리 귀에 오래 남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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