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리포트] 쏟아져 나오는 메타버스 솔루션이 가지는 의미

['실리콘밸리 리포트'로아와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전하는 '팀 미라클레터' 가 협업하여 제공해드리는 아티클입니다. 이번 편을 시작으로 매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최신 비즈니스 트렌드를 현지에서 직접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지난 23일 한국시간 밤 10시.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IT 기업 중 한 곳인 어도비(Adobe)가 새로운 제품을 하나 내놓았습니다. '어도비'하면 사진을 창의적으로 편집하게끔 도와주는 '포토샵(Photoshop)', 영상을 편집하고 특수효과를 입히는 '프리미어 프로(Premiere Pro)', '애프터 이펙트(After Effect)' 등의 소프트웨어를 주력 상품으로 판매하는 곳이죠. 그런데, 이 회사가 포토샵, 프리미어 프로에서 보여준 사진과 영상 편집·제작 기능을 3차원에 도입한다고 이날 선언합니다. 서브스턴스 3D (Substance 3D)라는 이름의 이 제품은 24일부터 이미 출시가 되었습니다. 사실 어도비가 하루 아침에 이 제품을 만든 것은 아니고요. 서브스턴스 3D를 내놓기 위해 어도비는 2015년부터 아래와 같은 기업 인수합병 및 인재영입을 통해 오랜 기간 준비를 해 왔다고 합니다.

  • 2015년 게임 애니메이션 관련 기업 '믹사모'(Mixamo) 인수  

  • 2019년 3차원 그래픽 에디팅 회사 알레고리드믹 (Allegorithmic) 인수 

  • 2019년 가상현실 제작회사 미디엄 (Medium) 인수

  • 2019년 픽사(Pixar) 출신 '귀도 쿼로니'를 엔지니어링 팀 총괄로 영입


이런 오랜 노력이 축적된 결과 3차원 그래픽 편집을 가장 '어도비' 스럽게 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낸 것이겠죠. 하지만 3차원 세상을 창작자들이 손수 제작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닐텐데요. 어도비가 이번에 내놓은 제품의 핵심은 바로 그런 진입장벽을 낮추는데 있습니다.

어도비의 서브스턴스3D 제품들




그 예로 이번에 내놓는 서브스턴스 3D 제품을 통해 수 만가지의 '라이브러리'를 제공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남이 만들어 놓은 3차원 입체의 예시들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게 했다는 건데요. 결국 이건 무엇을 뜻할까요. 이번 제품 발표를 총괄한 어도비 본사의 임원 세바스티안 데구이(Sebastian Deguy) 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나 손쉽게 3차원 그래픽을 만들 수 있게 하는데 집중했습니다." 다시 말해 마치 레고블럭 조립하듯이, 혹은 마인크래프트 게임 하듯이, 별다른 지식이 없어도 3차원 그래픽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솔루션을 내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뿐만 아니라 머신러닝 같은 인공지능 기술이 도입되어 3차원 그래픽 편집 도중 컴퓨터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부분들은 사람의 노동력을 들이지 않아도 자동처리해 주기도 합니다.

어도비의 서브스턴스3D 제품 시연장면



어도비는 왜 3D 제품을 만들었나 

그런데, 어도비는 왜 이런 3차원 그래픽 디자인 제품을 내놓은 걸까요? 세바스티안 데구이는 이렇게 전합니다. "데이터를 살펴봤더니, 지난 1년 동안 3D 제품 사용량이 40% 급증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메타버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과 같은 키워드들을 외치고 있고 인터넷-모바일을 넘어서는 새로운 플랫폼으로서 컴퓨터가 그려내는 가상의 3차원 세상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도비 뿐만이 아닙니다. '유니티(Unity)'라는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회사 유니티의 존 리치텔로 CEO는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차원 가상현실 세계를 이용하는 사용자 숫자가 조만간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 입니다. 

첫째, 일반적인 사용자들이 가상현실 속에서의 삶에 익숙해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3차원 가상현실 세계를 만들어 줄 개발자들의 생태계가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저렴하고 성능이 좋은 가상현실 증강현실 디바이스 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타버스를 서비스로 제공하는 엔비디아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3차원 가상세계에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곧 쏟아져 나올 거라는 분위기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제가 거주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에 팽배합니다. 증거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페이스북(Facebook)이 이 분야에 매우 적극적이라 가상현실 하드웨어인 '오큘러스(Oculus)'의 서비스 생태계를 만드는데 CEO인 마크 저커버그의 신경이 온통 쏠려 있다고 하죠. 가상현실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과 또 그를 소비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겠다는 페이스북은 결국 '메타버스'라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 쪽에서 페이스북의 막강한 경쟁자인 '스냅(Snap)'은 최근에 증강현실 안경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특히 프리미엄 제품은 아예 창작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면서 증강현실 컨텐츠를 만들기 위해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도 정말 열심입니다. 이 회사가 올해 3월 자사 개발자 대회를 통해 발표한 '메쉬(Mesh)'라고 하는 3차원 입체 디자인 협업 소프트웨어가 그 증거입니다. 제품의 시연영상을 보면 메쉬를 사용하는 개발자들은 3차원 가상공간 속에서 가상현실 디바이스를 착용한 채 원거리에 있는 동료들과 협업을 진행합니다. 같이 도면을 띄워놓고 설계를 함께 한다거나, 홀로그램으로 만들어 진 가상의 지구본을 사이에 놓고 서로 이야기하는 모습들이 3차원 가상공간 안에서 펼쳐집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공개한 '메쉬' 시범영상의 한 장면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스냅 등 기라성 같은 미국의 IT 기업들이 3차원 그래픽으로 만들어 지는 메타버스 산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CEO까지 나서면서 적극적으로 메타버스 플랫폼을 강하게 밀어부치고 있는 회사가 하나 있습니다. 그래픽 반도체 회사로만 알려져 있던 엔비디아(Nvidia) 인데요. '옴니버스(Omniverse)'라고 하는 엔비디아의 3차원 그래픽 솔루션은 가상현실 세계를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옴니버스'는 앞서 본 어도비의 서브스턴스 3D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메쉬와 유사하게 3차원 이미지나 영상을 여러 사람들이 협업해서 만들 수 있게 하는 소프트웨어 입니다. 특이한 점은 그림자, 물방울의 움직임 등과 같이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물리법칙들이 '옴니버스' 안에서 자동으로 구현된다는 점인데요. 이 때문에 건축이나 제품디자인 등과 같은 산업영역에서도 쓰임새가 많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옴니버스'라는 제품에 대해 엔비디아 CEO인 젠슨 황이 거는 기대가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아래에 최근 젠슨 황 CEO가 직접 기자들과 이야기했던 내용의 일부를 소개드려 봅니다. 얼마나 그가 진지하게 메타버스 시장에 기대를 걸고 있는지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메타버스에서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제품의 숫자가 유니버스(현실세계)에서 디자인하는 제품의 가짓수보다 훨씬 많아지는 시대가 반드시 온다고 말입니다. 이미 2차원 그래픽을 컴퓨터로 구현했을 때 우리는 모두가 알아차렸습니다. 종이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던 시대는 끝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3차원 그래픽이 가능해 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알아차렸습니다. 현실세계보다 가상세계가 훨씬 재미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3차원 가상세계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오늘날 도시를 설계할 때는 인터넷 연결을 잘 해내기 위해 중계기를 어디에 설치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작업이 매우 복잡합니다. 그러나 메타버스 속에서 도시를 설계한다면 주파수의 움직임까지 계산해 넣어서 인공지능으로 5G 중계기를 어디에 어떻게 설치해야 인터넷 연결이 끊기지 않는 스마트시티를 만들 수 있을지 손쉽게 판단해 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일들이 가능해 지려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현실세계를 3차원 디지털 세상으로 구현해 낼 수 있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엔진이 필요합니다. 둘째, 현실세계의 물리법칙을 디지털로 구현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전자파, 물분자, 공기의 흐름 등과 같은 보이지 않는 물리법칙들이 메타버스 세계에서 적용 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겁니다. 셋째, 이 모든 것들을 실제로 구현해 내는 엔지니어들이 자유롭게 소프트웨어들을 적용해 볼 수 있도록 열린 생태계가 갖춰져야 합니다."

젠슨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6월 2일 기자회견에서 이야기하는 모습



기업이 싸우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제품을 사주는 소비자들이 싸우는 것이다


젠슨 황 CEO가 했던 마지막 말에 여운이 있습니다. 바로 3차원 가상세계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 말입니다. 이 말에는 어쩌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메타버스 전쟁'의 핵심이 녹아있을 것 같습니다. 왜 이 말이 중요한지 한번 이야기를 드려 보겠습니다. 

메타버스를 둘러싼 싸움은 이제 피튀기는 전장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형기업들도 이처럼 3차원 그래픽 시장에 뛰어들고 있으니까요. 누구나 쉽게 3차원 그래픽을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앞으로는 누구나 소셜미디어에 포스팅을 올리듯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될 것 같습니다. 이미 로블럭스, 마인크래프트 같은 게임 세상에서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요. 한마디로 플랫폼 경쟁이 벌어지게 되는 건데요.

플랫폼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제품공급자의 생태계입니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컨텐츠 창작자들의 생태계가 늘어났기 때문이겠죠. 넷플릭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각종 영상컨텐츠 제작 스튜디오들과 자신들을 연결시키는 단단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틱톡 같은 플랫폼들이 급성장한 이유도 그 곳에 새로운 영상들을 올리는 크리에이터들이 밀려들어오면서 였죠. 네이버가 미국에서 웹툰 플랫폼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웹툰을 올리는 이들의 생태계를 잘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 메타버스 플랫폼인 로블럭스 역시 재미있는 게임들이 매우 다양하게 공급되면서 폭발적 성공을 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경영컨설턴트인 람 차란(Ram Charan)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기업은 기업 대 기업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만든 생태계 대 생태계로 경쟁하는 것이다." 내가 만든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태계가 넓어져야 메타버스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 쏟아져 나오고 있는 '서브스턴스 3D’, '메쉬', '옴니버스' '유니티'  등과 같은 3차원 그래픽 솔루션들은 각자 이 도구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태계를 만들어 갈 겁니다. 어도비, MS, 엔비디아 등과 같은 회사들의 경쟁포인트는 지금 그런 사람들의 생태계를 누가 먼저 확실하게 갖추느냐의 싸움인 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젠슨 황이 했던 마지막 말은 바로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는 메타버스 싸움



마케팅에서부터 열리는 메타버스

지금까지는 미국에서는 벌어지고 있는 메타버스 전쟁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요. 이제 우리 기업들이 메타버스 시대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메타버스 전쟁에 한국 기업들이 뛰어드는 것이 올바른 전략일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이미 MS 엔비디아 어도비 유니티 같은 곳들이 개발해 둔 메타버스 제작도구들을 뛰어넘는 더 나은 도구를 만들어서 그 도구를 사용하는 이들의 생태계를 만들 자신이 있다면 말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금 더 선도적인 생각을 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인터넷이 처음 만들어 졌을 때 그랬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네트워크 접속프로그램을 만들었죠. 하지만 접속문제를 해결한 기업들은 그다지 장기적으로 돈을 많이 벌지 못했습니다. 이후에 진짜로 인터넷에서 돈을 번 기업들은 전자상거래, 포털, 컨텐츠 유통 등과 같은 서비스를 만들었던 회사들이었죠.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TV산업 역시 마찬가지 였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TV를 만들어서 돈을 벌었지만, 정작 돈을 더 많이 번 기업들은 TV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TV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광고를 해서 제품을 판매했던 기업들이었습니다. 인터넷이 그 자체로 소비자들에게 가치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TV가 TV 라는 상자 그 자체로 소비자들에게 가치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서비스와 컨텐츠들이 소비자들에게 즐거움과 편리함을 가져다 주는 것이기 때문일 겁니다.

메타버스는 어떨까요? 역시 비슷한 형태로 전개될 거라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메타버스라는 기술 그 자체가 소비자들에게 가치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메타버스 속에 올라와 있는 게임 또는 3차원 가상현실 서비스 또는 컨텐츠가 소비자들에게 가치를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기획하고 고민하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겁니다. 


닌텐도 동물의숲 게임 안에서 이뤄진 구찌의 광고캠페인 장면 (창작자들이 구찌가 제공하는 도구들을 이용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함으로써 광고효과를 높였다)



하나의 사례로 광고시장이 있습니다. 이미 일부 기업들이 메타버스 세상 속에서 광고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이케아 지사는 닌텐도의 메타버스 게임 '동물의 숲'에 자신들의 가구 카탈로그를 광고하는 캠페인을 진행했고요. 필리핀의 KFC는 동물의 숲에서 치킨 할아버지 모습을 한 캐릭터를 찾으면 할인쿠폰을 주는 광고를 진행했습니다. 명품브랜드인 구찌는 로블럭스 게임 플랫폼 안에 자신의 디자인이 담긴 정원을 마련하기도 했었죠. 미국에 있는 마케터들은 게임을 통해 광고를 진행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매체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게임 마케팅에서는 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인터랙티브 광고가 가능하고, 소비자들의 반응 또한 대면반응과는 다르게 매우 직설적이고 솔직하거든요. 

게다가 메타버스 속에서 진행하는 게임은 지금 가장 '핫'한 미디어입니다. 코로나 판데믹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전 세계 게임 인구가 많은 시기는 없었거든요. (현재 전 세계 게임 인구는 31억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게임을 즐기기위해 지불하는 비용도 앞으로는 그리 많이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비싼 PC나 콘솔을 사지 않아도 월정액 구독형태로 게임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죠. MZ세대들은 게임을 통해 사교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친구들과 TV를 같이 보는게 아니라 게임을 즐기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광고산업처럼 메타버스를 이용해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산업들을 찾아내는 것이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 경쟁에 직접 뛰어드는 것보다 더 나은 전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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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한국시간 밤 10시.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IT 기업 중 한 곳인 어도비(Adobe)가 새로운 제품을 하나 내놓았습니다. '어도비'하면 사진을 창의적으로 편집하게끔 도와주는 '포토샵(Photoshop)', 영상을 편집하고 특수효과를 입히는 '프리미어 프로(Premiere Pro)', '애프터 이펙트(After Effect)' 등의 소프트웨어를 주력 상품으로 판매하는 곳이죠. 그런데, 이 회사가 포토샵, 프리미어 프로에서 보여준 사진과 영상 편집·제작 기능을 3차원에 도입한다고 이날 선언합니다. 서브스턴스 3D (Substance 3D)라는 이름의 이 제품은 24일부터 이미 출시가 되었습니다. 사실 어도비가 하루 아침에 이 제품을 만든 것은 아니고요. 서브스턴스 3D를 내놓기 위해 어도비는 2015년부터 아래와 같은 기업 인수합병 및 인재영입을 통해 오랜 기간 준비를 해 왔다고 합니다.

  • 2015년 게임 애니메이션 관련 기업 '믹사모'(Mixamo) 인수  

  • 2019년 3차원 그래픽 에디팅 회사 알레고리드믹 (Allegorithmic) 인수 

  • 2019년 가상현실 제작회사 미디엄 (Medium) 인수

  • 2019년 픽사(Pixar) 출신 '귀도 쿼로니'를 엔지니어링 팀 총괄로 영입


이런 오랜 노력이 축적된 결과 3차원 그래픽 편집을 가장 '어도비' 스럽게 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낸 것이겠죠. 하지만 3차원 세상을 창작자들이 손수 제작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닐텐데요. 어도비가 이번에 내놓은 제품의 핵심은 바로 그런 진입장벽을 낮추는데 있습니다.

어도비의 서브스턴스3D 제품들




그 예로 이번에 내놓는 서브스턴스 3D 제품을 통해 수 만가지의 '라이브러리'를 제공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남이 만들어 놓은 3차원 입체의 예시들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게 했다는 건데요. 결국 이건 무엇을 뜻할까요. 이번 제품 발표를 총괄한 어도비 본사의 임원 세바스티안 데구이(Sebastian Deguy) 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나 손쉽게 3차원 그래픽을 만들 수 있게 하는데 집중했습니다." 다시 말해 마치 레고블럭 조립하듯이, 혹은 마인크래프트 게임 하듯이, 별다른 지식이 없어도 3차원 그래픽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솔루션을 내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뿐만 아니라 머신러닝 같은 인공지능 기술이 도입되어 3차원 그래픽 편집 도중 컴퓨터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부분들은 사람의 노동력을 들이지 않아도 자동처리해 주기도 합니다.

어도비의 서브스턴스3D 제품 시연장면



어도비는 왜 3D 제품을 만들었나 

그런데, 어도비는 왜 이런 3차원 그래픽 디자인 제품을 내놓은 걸까요? 세바스티안 데구이는 이렇게 전합니다. "데이터를 살펴봤더니, 지난 1년 동안 3D 제품 사용량이 40% 급증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메타버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과 같은 키워드들을 외치고 있고 인터넷-모바일을 넘어서는 새로운 플랫폼으로서 컴퓨터가 그려내는 가상의 3차원 세상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도비 뿐만이 아닙니다. '유니티(Unity)'라는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회사 유니티의 존 리치텔로 CEO는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차원 가상현실 세계를 이용하는 사용자 숫자가 조만간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 입니다. 

첫째, 일반적인 사용자들이 가상현실 속에서의 삶에 익숙해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3차원 가상현실 세계를 만들어 줄 개발자들의 생태계가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저렴하고 성능이 좋은 가상현실 증강현실 디바이스 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타버스를 서비스로 제공하는 엔비디아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3차원 가상세계에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곧 쏟아져 나올 거라는 분위기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제가 거주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에 팽배합니다. 증거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페이스북(Facebook)이 이 분야에 매우 적극적이라 가상현실 하드웨어인 '오큘러스(Oculus)'의 서비스 생태계를 만드는데 CEO인 마크 저커버그의 신경이 온통 쏠려 있다고 하죠. 가상현실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과 또 그를 소비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겠다는 페이스북은 결국 '메타버스'라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 쪽에서 페이스북의 막강한 경쟁자인 '스냅(Snap)'은 최근에 증강현실 안경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특히 프리미엄 제품은 아예 창작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면서 증강현실 컨텐츠를 만들기 위해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도 정말 열심입니다. 이 회사가 올해 3월 자사 개발자 대회를 통해 발표한 '메쉬(Mesh)'라고 하는 3차원 입체 디자인 협업 소프트웨어가 그 증거입니다. 제품의 시연영상을 보면 메쉬를 사용하는 개발자들은 3차원 가상공간 속에서 가상현실 디바이스를 착용한 채 원거리에 있는 동료들과 협업을 진행합니다. 같이 도면을 띄워놓고 설계를 함께 한다거나, 홀로그램으로 만들어 진 가상의 지구본을 사이에 놓고 서로 이야기하는 모습들이 3차원 가상공간 안에서 펼쳐집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공개한 '메쉬' 시범영상의 한 장면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스냅 등 기라성 같은 미국의 IT 기업들이 3차원 그래픽으로 만들어 지는 메타버스 산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CEO까지 나서면서 적극적으로 메타버스 플랫폼을 강하게 밀어부치고 있는 회사가 하나 있습니다. 그래픽 반도체 회사로만 알려져 있던 엔비디아(Nvidia) 인데요. '옴니버스(Omniverse)'라고 하는 엔비디아의 3차원 그래픽 솔루션은 가상현실 세계를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옴니버스'는 앞서 본 어도비의 서브스턴스 3D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메쉬와 유사하게 3차원 이미지나 영상을 여러 사람들이 협업해서 만들 수 있게 하는 소프트웨어 입니다. 특이한 점은 그림자, 물방울의 움직임 등과 같이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물리법칙들이 '옴니버스' 안에서 자동으로 구현된다는 점인데요. 이 때문에 건축이나 제품디자인 등과 같은 산업영역에서도 쓰임새가 많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옴니버스'라는 제품에 대해 엔비디아 CEO인 젠슨 황이 거는 기대가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아래에 최근 젠슨 황 CEO가 직접 기자들과 이야기했던 내용의 일부를 소개드려 봅니다. 얼마나 그가 진지하게 메타버스 시장에 기대를 걸고 있는지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메타버스에서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제품의 숫자가 유니버스(현실세계)에서 디자인하는 제품의 가짓수보다 훨씬 많아지는 시대가 반드시 온다고 말입니다. 이미 2차원 그래픽을 컴퓨터로 구현했을 때 우리는 모두가 알아차렸습니다. 종이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던 시대는 끝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3차원 그래픽이 가능해 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알아차렸습니다. 현실세계보다 가상세계가 훨씬 재미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3차원 가상세계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오늘날 도시를 설계할 때는 인터넷 연결을 잘 해내기 위해 중계기를 어디에 설치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작업이 매우 복잡합니다. 그러나 메타버스 속에서 도시를 설계한다면 주파수의 움직임까지 계산해 넣어서 인공지능으로 5G 중계기를 어디에 어떻게 설치해야 인터넷 연결이 끊기지 않는 스마트시티를 만들 수 있을지 손쉽게 판단해 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일들이 가능해 지려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현실세계를 3차원 디지털 세상으로 구현해 낼 수 있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엔진이 필요합니다. 둘째, 현실세계의 물리법칙을 디지털로 구현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전자파, 물분자, 공기의 흐름 등과 같은 보이지 않는 물리법칙들이 메타버스 세계에서 적용 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겁니다. 셋째, 이 모든 것들을 실제로 구현해 내는 엔지니어들이 자유롭게 소프트웨어들을 적용해 볼 수 있도록 열린 생태계가 갖춰져야 합니다."

젠슨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6월 2일 기자회견에서 이야기하는 모습



기업이 싸우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제품을 사주는 소비자들이 싸우는 것이다


젠슨 황 CEO가 했던 마지막 말에 여운이 있습니다. 바로 3차원 가상세계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 말입니다. 이 말에는 어쩌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메타버스 전쟁'의 핵심이 녹아있을 것 같습니다. 왜 이 말이 중요한지 한번 이야기를 드려 보겠습니다. 

메타버스를 둘러싼 싸움은 이제 피튀기는 전장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형기업들도 이처럼 3차원 그래픽 시장에 뛰어들고 있으니까요. 누구나 쉽게 3차원 그래픽을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앞으로는 누구나 소셜미디어에 포스팅을 올리듯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될 것 같습니다. 이미 로블럭스, 마인크래프트 같은 게임 세상에서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요. 한마디로 플랫폼 경쟁이 벌어지게 되는 건데요.

플랫폼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제품공급자의 생태계입니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컨텐츠 창작자들의 생태계가 늘어났기 때문이겠죠. 넷플릭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각종 영상컨텐츠 제작 스튜디오들과 자신들을 연결시키는 단단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틱톡 같은 플랫폼들이 급성장한 이유도 그 곳에 새로운 영상들을 올리는 크리에이터들이 밀려들어오면서 였죠. 네이버가 미국에서 웹툰 플랫폼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웹툰을 올리는 이들의 생태계를 잘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 메타버스 플랫폼인 로블럭스 역시 재미있는 게임들이 매우 다양하게 공급되면서 폭발적 성공을 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경영컨설턴트인 람 차란(Ram Charan)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기업은 기업 대 기업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만든 생태계 대 생태계로 경쟁하는 것이다." 내가 만든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태계가 넓어져야 메타버스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 쏟아져 나오고 있는 '서브스턴스 3D’, '메쉬', '옴니버스' '유니티'  등과 같은 3차원 그래픽 솔루션들은 각자 이 도구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태계를 만들어 갈 겁니다. 어도비, MS, 엔비디아 등과 같은 회사들의 경쟁포인트는 지금 그런 사람들의 생태계를 누가 먼저 확실하게 갖추느냐의 싸움인 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젠슨 황이 했던 마지막 말은 바로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는 메타버스 싸움



마케팅에서부터 열리는 메타버스

지금까지는 미국에서는 벌어지고 있는 메타버스 전쟁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요. 이제 우리 기업들이 메타버스 시대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메타버스 전쟁에 한국 기업들이 뛰어드는 것이 올바른 전략일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이미 MS 엔비디아 어도비 유니티 같은 곳들이 개발해 둔 메타버스 제작도구들을 뛰어넘는 더 나은 도구를 만들어서 그 도구를 사용하는 이들의 생태계를 만들 자신이 있다면 말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금 더 선도적인 생각을 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인터넷이 처음 만들어 졌을 때 그랬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네트워크 접속프로그램을 만들었죠. 하지만 접속문제를 해결한 기업들은 그다지 장기적으로 돈을 많이 벌지 못했습니다. 이후에 진짜로 인터넷에서 돈을 번 기업들은 전자상거래, 포털, 컨텐츠 유통 등과 같은 서비스를 만들었던 회사들이었죠.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TV산업 역시 마찬가지 였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TV를 만들어서 돈을 벌었지만, 정작 돈을 더 많이 번 기업들은 TV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TV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광고를 해서 제품을 판매했던 기업들이었습니다. 인터넷이 그 자체로 소비자들에게 가치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TV가 TV 라는 상자 그 자체로 소비자들에게 가치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서비스와 컨텐츠들이 소비자들에게 즐거움과 편리함을 가져다 주는 것이기 때문일 겁니다.

메타버스는 어떨까요? 역시 비슷한 형태로 전개될 거라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메타버스라는 기술 그 자체가 소비자들에게 가치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메타버스 속에 올라와 있는 게임 또는 3차원 가상현실 서비스 또는 컨텐츠가 소비자들에게 가치를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기획하고 고민하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겁니다. 


닌텐도 동물의숲 게임 안에서 이뤄진 구찌의 광고캠페인 장면 (창작자들이 구찌가 제공하는 도구들을 이용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함으로써 광고효과를 높였다)



하나의 사례로 광고시장이 있습니다. 이미 일부 기업들이 메타버스 세상 속에서 광고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이케아 지사는 닌텐도의 메타버스 게임 '동물의 숲'에 자신들의 가구 카탈로그를 광고하는 캠페인을 진행했고요. 필리핀의 KFC는 동물의 숲에서 치킨 할아버지 모습을 한 캐릭터를 찾으면 할인쿠폰을 주는 광고를 진행했습니다. 명품브랜드인 구찌는 로블럭스 게임 플랫폼 안에 자신의 디자인이 담긴 정원을 마련하기도 했었죠. 미국에 있는 마케터들은 게임을 통해 광고를 진행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매체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게임 마케팅에서는 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인터랙티브 광고가 가능하고, 소비자들의 반응 또한 대면반응과는 다르게 매우 직설적이고 솔직하거든요. 

게다가 메타버스 속에서 진행하는 게임은 지금 가장 '핫'한 미디어입니다. 코로나 판데믹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전 세계 게임 인구가 많은 시기는 없었거든요. (현재 전 세계 게임 인구는 31억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게임을 즐기기위해 지불하는 비용도 앞으로는 그리 많이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비싼 PC나 콘솔을 사지 않아도 월정액 구독형태로 게임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죠. MZ세대들은 게임을 통해 사교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친구들과 TV를 같이 보는게 아니라 게임을 즐기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광고산업처럼 메타버스를 이용해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산업들을 찾아내는 것이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 경쟁에 직접 뛰어드는 것보다 더 나은 전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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